미래주의와 현대사회 「무형과 유형의 결합」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공간 속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의 1913년 청동 조각상. 추상적인 인간 형태가 강렬하고 유동적인 자세로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미래주의 운동의 걸작으로 여겨집니다.
Umberto Boccioni-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 1913, Bronz, 111.2×88.5×40cm

처음 강의 자료실에 올라온 Futurism 자료를 보기 전에는 ‘미래주의가 무엇이었더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분명히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도 배웠을 것이고, 최근 디자인사 과목에서도 배웠을 것이다. 강의 자료를 쓱 본 후에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를 보고 바로 ‘아! 속도감, 역동성, 기계’라는 키워드가 생각났다. 분명 디자인사 시간에 짧게나마 다루고 넘어갔던 부분이었다. 

미래주의는 독특하게 ‘나는 이제 미래주의다!’식으로 선언을 하고 시작한 미술 사조였다. 그 내용은 ‘전통적인 문학의 이상적 편견을 깨버리고 기계문명의 속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겠다.’와 같은 내용이다. 위와 같은 내용의 미래주의를 현재 시대에서 미래주의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Filippo Tommaso Marinetti 가 선언한 미래주의는 2차 산업 혁명 이후에 기계의 발달로 더 고속화되고 역동적이어진 사회를 작가 나름의 견해로 표현하였다. 2차 산업혁명를 나누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를 나누면 현재 우리 사회는 3,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볼 수 있다. 2차 산업혁명이 속도와 기계로 키워드를 잡는다면 3, 4차 산업혁명은 무엇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3, 4차 산업혁명 역시 속도와 정보 등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속도라는 공통된 부분에서 발목을 잡히는 느낌이 들어 더 좋은 자료를 찾아보았다. 찾아본 자료는 3차 산업 혁명은 온라인 가상세계를 만들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4차산업혁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를 결합하여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정의 내렸다. 이와 같은 내용을 내 식대로 정의하면 3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사람들은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감각을 가졌고, 4차산업혁명을 계기로 무형과 유형을 구분이 모호의 진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생각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주의 작품들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과거 미래주의의 작품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미래주의의 작품은 앞에 말했듯이 속도감, 기계 등의 주제를 화폭에 표현해냈다. 기법 부분에서는 팔다리의 움직임을 연속되게 보여주는 표현을 제외하고는 미래주의만의 독특한 기법을 확인 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이라든지 입체주의적인 대상의 분해와 재조합과 같은 방식의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보고 미래주의 작가들은 기법을 통한 의미 전달보다는 담고 있는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느꼈다.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 바다를 배경으로, 픽셀 아트로 만들어진 인어 여왕의 웅장한 조형물. 푸른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표정, 조개 장식과 산호초로 둘러싸인 모습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우산 모양 구조물이 있고, 주변에는 고래와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Aquasomnia by Ushio Tokura

강의 자료 중 누구보다도 이 글을 쓸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가는 ‘루이지 루솔로’다. ‘소음은 기계가 등장한 이후에 나타났고, 기계가 많은 소음을 만들어 내어 순수한 소리는 지루할 뿐 자극이 되지 못한다.’라는 말이 나는 ‘새로운 A′가 나타나게 되면 이전에 있던 A는 별다른 느낌을 전달해주지 못한다.’라고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루이지 루솔로’의 선언을 해석한 내용을 현재 상황에 대입해보면 ‘온라인의 가상세계와 같은 무형의 것이 출현하면서 오프라인의 유형의 것으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 한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짧게는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에서 길게는 게임「마인크래프트」로 조형물을 만드는 Uchio Tokura 라는 작가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서의 미래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무형의 것을 사용하여 유형이라 보이게 하는 정도가 미래주의의 영역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요즘에는 무형의 것이면서 동시에 유형의 것인, 무형과 유형이 결합한 형태의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현 상황의 미래주의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의 영역이 조각이나 화폭을 벗어나 표현된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화폭에 놓인 동시에 화폭에 놓인 것이 아닌 무언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무형의 것과 유형의 것’처럼 애매한 표현 때문에 글을 쓰면서도 무슨 내용인지 정리가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현대사회 또한 넘치는 정보와 다원화 때문에 과거처럼 정리된 한 노선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주의란 결국 한 사람이 느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표현하는 미술 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